영화를 보다가 멈춰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쉰들러 리스트를 처음 봤을 때 정확히 그랬습니다. 3시간이 넘는 흑백 화면이었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실체를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오스카 쉰들러라는 이름 세 글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홀로코스트, 그 현장에 뛰어든 기회주의자1939년 9월,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단 2주 만에 점령합니다. 폴란드 전역의 유대인들은 크라쿠프 시로 강제 이주를 명령받았고, 그들의 주택과 사업체를 포함한 모든 재산은 독일 나치에게 통째로 빼앗겼습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
솔직히 저는 반지의 제왕을 오랫동안 "그냥 판타지 고전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영화 탑 10에 항상 이름을 올린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앉아서 보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몸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보고 나니 이게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동시에 "왜 이걸 이제야 봤지?" 하는 후회도 밀려왔습니다.중간계라는 세계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교했습니다일반적으로 판타지 영화의 배경 세계관은 "그냥 마법이 있는 중세 유럽"쯤으로 퉁쳐서 넘어간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확인한 건 전혀 달랐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인 중간계(Middle-earth)는 J.R.R. 톨킨이 1950년대에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톨킨은 이 세계..
대부 2는 속편이 원작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게 과연 범죄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화려한 총격전 하나 없이 침묵과 눈빛만으로 3시간 넘게 관객을 붙잡아 놓는 영화. 비토 콜레오네와 하이먼 로스가 어떻게 뉴욕 암흑가를 함께 장악했는지, 그 이면에 실제 마피아 역사가 겹쳐지는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물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비토 콜레오네가 대부가 된 진짜 이유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비토가 그냥 타고난 두목 기질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올라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면, 그게 아닙니다. 그의 성장에는 아주 구체적인 계산과 관찰이 있었습니다.어린 비토가 뉴욕 헬스키친에 정착했을 때 그 동네를 쥐고 흔들던 인..
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이번엔 또 어떤 방식으로 악당을 물리치려나" 하며 결말을 예측하다 지쳐버린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를 다시 꺼내 봤을 때, 이 영화가 그 공식을 처음부터 비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선과 악이 이렇게까지 뒤엉킬 수 있는 히어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선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방식대부분의 히어로물은 도덕적 이분법(moral dichotomy), 즉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는 구도 위에서 움직입니다. 여기서 도덕적 이분법이란 등장인물을 선한 편과 악한 편으로 철저히 구분해 관객이 감정을 몰입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서사 장치입니다. 다크 나이트는 영화 초반 이 구도를 아주 충실하게 따릅니다. 조커는 은행 강도 현장에서 공범들을 차례차례 ..
결말을 알면서도 손에 땀이 났습니다. 1979년 12월 12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과서로 배웠고, 관련 기록도 찾아본 적 있었는데, 막상 영화관 좌석에 앉자 그 모든 사전 지식이 무색해지더군요. 영화 은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다루면서도 2시간 21분 내내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 작품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는 12.12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결말을 알아도 손에 땀이 나는 긴장감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은, 결말을 아는 관객에게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은 이 문제를 실시간 작전 중계 방식으로 돌파합니다. 군 내부의 지휘 계통(command chain), 즉 명령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계층 구조와 그것..
영웅을 영웅으로만 그린 영화가 과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저는 을 보고 나서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개봉 이틀 만에 누적 관객 125만 명을 돌파한 이 영화, 수치만 보면 흥행작이 분명한데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잘 만든 영화와 마음에 깊이 박히는 영화 사이의 간극을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꼈습니다.현빈 연기와 롱테이크가 만든 무게감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 독립운동 소재 특유의 뜨거운 민족주의 감성으로 밀어붙이는 영화일 거라 짐작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스크린에 펼쳐진 건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홍경표 촬영 감독의 롱테이크(long take) — 쉽게 말해 카메라를 끊지 않고 오랜 시간 한 장면을 이어서 담는 기법 — 가 영화..